Lee Bae

Transition

June 9 – August 6, 2016

Wooson Gallery
(T-41959) 72, Bongsanmunhwa-gil, Jung-gu, Daegu,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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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재료인 숯과 그가 가진 동양적 배경을 바탕으로 화두에 접근한다. 물론, 이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동양적 관점의 철학이나 전통적 소재 그리고, 한국 추상미술이 가지는 특유의 절제된 조형적 정교함은 그가 분명 동양적 뿌리를 지닌 작가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자 하는 부분은 작가의 전통적 근원 못지 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동시대의 사회적 흐름에 동참하는 현대 (콘템포러리) 미술작가로서의 그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1956년 청도 출생의 이배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의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1989년 예술인이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건너 갔다. 그리고, 이것은 이배 자신의 작가적 인생이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인 동시에 유럽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가 일어 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전환의 물결이 일던 그야말로 변화를 꿈꾸던 시대적 과도기이기도 했다. 1989년 그가 파리를 거점으로 작업 활동을 시작한 무렵 작가에게 일어난 많은 인식의 변화와 함께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배의 작품의 변화는 ‘검정’으로의 전개라 할 수 있다. 그의 캔버스를 검정으로 온통 뒤 덮었던 배경 뒤에는 많은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것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통해 이배가 그 동안 믿고 쌓아왔던 많은 것들을 향한 인식의 변화가 벽이 무너지듯 검은색의 화면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배 작품의 이런 검정으로의 극단적 변화는 1915년 “모든 것은 이 검은색 사각형 안으로 사라졌다”라고 선언했던 말레비치의 검정과 많은 유사점을 가진다. 검정으로 덮어 모든 것이 사라져 없어진 이배 작품의 ‘무無’에 대한 인식이 제거와 정화를 통해 이루어진 부재不在로서의 ‘무無’가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이 검정 사각형 속으로 안으로 빨려 들어가 그 안을 채우고 있다는 말레비치의 검정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단색적 회화양식이 형태와 색이라는 즐거움을 절제하고 정신의 정화를 추구한 반면 이배의 작품의 검정색 모노크롬은 모든 현실적 요소를 극도로 압축시켜 축적된 포화상태라는 점에서 다른 모노크롬 작품과 구분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말레비치가 대상의 부재를 물질적 현실세계를 초월하는 정신세계의 숭고함을 우주적 가치로 간주한 반면, 이배의 작품에서 물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그런 의미에서 ‘숯’은 이배에게 중요한 재료가 아닐 수 없다. 숯은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지 않으면 전소되어 버리고 밀도 있고 단단한 목질만이 남아 새로운 에너지로 변환되는 불완전 연소물이라는 소멸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로 재탄생하는 그 성질 때문이다. 2000년에 들어가면서 이배의 검정이 내포하는 가능성은 공간을 넘어서 시간의 연구로 이어지고, 화면 전체를 덮고 있던 숯의 검정은 한 층 더 밀도 높은 먹의 검정이 왁스와 같은 메디움과 혼합되어 모호한 기호적 형태로 캔버스 위에 나타난다.

이런 모호한 기호는 관념을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것으로 이 상징적 이미지가 내포하는 의미는 막연하고 가변적인 것으로 정확하게 규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배는 이러한 자연이나 사물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지 않는 모호한 기호를 통해 보는 사람의 참여를 유발시키고 각자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작품이 완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은 예술에 반영되고 그 시대적 동향 속에 자신을 포함시킬지 제외시킬지에 대한 판단은 작가의 주체적 의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 능력은 다양하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주체적 인식을 통해 ‘의미의 변환’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독자적 관점이며 동시에 작가의 독창성의 원동력이다. 검은 색이야 말로 생명과 육체 정신 등 모든 면의 본질적인 색상으로 간주하고 검정색의 작품만을 고집해 오던 오딜로 르동이 50세를 넘어 서면서 예상치 못 한 황홀한 색채의 작품으로 전개했듯 이배의 검정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앞으로 많은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ARTICLE-PRESS:
흑과 백의 순환, 개념과 형식 사이, 아트인컬쳐, June 2016 VIEW ARTICLE (1.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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